티스토리 뷰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 Paolo fuori le Mura) :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운 성당
이 베드로 2025. 6. 16. 19:58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 Paolo fuori le Mura)은
로마 4대 교황 대성전 중 하나로,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성 밖’이라는 이름은 이 성당이 로마 성곽 밖에 위치한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서기 64~67년, 사도 바오로는 지금의 트레 폰타네(Tre Fontane) 지역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로마의 법과 풍습에 따라 무덤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뒤, 이곳에 바오로 성인을 기념하는 성당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소규모 성당이 건립되었고(324년 11월 18일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축성),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86년경)가 대규모 바실리카 양식으로 확장하여 5세기 초에 완공되었습니다.

다른 4대 대성전들이 지진과 침략, 홍수 등을 거치며 여러차례 보수와 재건을 거치면서 본래의 모습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은 오랜 세월 동안 옛 바실리카의 모습을 간직해왔습니다.
그러나 1823년 7월 15일, 한밤중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웅장했던 성전은 앱스 부분만 남긴 채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15세기 동안 이어져온 신앙과 예술의 유산이 단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로마 교회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비극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레오 12세 교황 때부터 유럽 각국의 도움으로 복원이 시작되어, 1840년 복자 비오 9세 교황 때 재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랑(nave)의 천장에는 비오 9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Dnalor 01, CC BY-SA 3.0 AT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at/deed.en>, via Wikimedia Commons





Dnalor 01,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성년(희년)에만 열린다는 성년의 문,
제가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닫혀 있었지만, 희년을 맞이한 올해(2025년) 1월 5일, 제임스 마이클 하비 추기경에 의해 로마의 마지막 성년의 문이 열렸습니다.
https://youtu.be/T3EDrTRqj1Y?si=yu-R1cejylGP58LV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은 5개의 회랑이 평행하게 나란히 배치된 구조로, 중앙 회랑 하나와 양쪽에 각각 2개의 측랑이 있습니다.
성밖 성 바오로 대성전(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은 5랑식(5개의 회랑)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바실리카 성당입니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대성당들은 3랑식(중앙 회랑+양쪽 측랑)이 많지만, 이곳은 중앙 회랑 하나와 그 양쪽에 각각 2개의 측랑이 있어 총 5개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경당이 ‘측면 회랑’ 자체에 위치한다기보다는, 측면 회랑을 따라 이동하다가 앱스(후진)로 들어가면 그 좌우에 경당이 있는 구조가 있습니다.
각 회랑마다 화강암 기둥이 줄지어 있는데, 일부는 고대 로마 포로 로마노의 에밀리아 공회당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윗 줄은 성 루카, 성 바오로, 예수님, 성 베드로, 성 안드레아 아랫줄은 천사 두명과 나머지 12사도 제자들 예수님의 발밑에 작은 인물이 하나 있는데 작품을 의뢰하거나 후원한 교황의 초상을 나타냅니다 이 인물은 예수님의 발 아래, 축소된 크기로 표현되며, 이는 그의 겸손함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상징합니다 이 모자이크는 교황 호노리우스 3세의 치세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발밑의 인물은 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는 모자이크 제작을 후원했고, 이 모자이크는 그를 기념하는 역할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 발다키노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작품으로, 화재에도 남아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발다키노 아래 지하로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데
주 제대 아래 유리와 철망 너머로는 바오로 사도의 석관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바티칸 고고학자들이 이 무덤 아래를 발굴하였고, 그 결과 2006년 12월에 석관(사르코파구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발굴은 순례자들이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직접 볼 수 있기를 원했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2006년 12월부터 석관의 한 면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투명한 바닥을 통해 석관의 측면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습니다.(4세기부터 보관된 것으로 추정)

바닥의 유리 아래의 돌 구조물은 옛 대성전의 앱스 일부로, 초기 대성전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곳에는 사도 바오로가 순교하기 전 감옥에서 차고 있던 쇠사슬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 베드로 성인상이 열쇠를 들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며 특별한 권한과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열쇠는 곧 하늘나라(천국)의 문을 여닫는 권한, 즉 교회를 다스리고 신앙을 해석하며 용서와 단죄의 권한을 상징합니다.
이 상징은 신약성경 마태오복음(마태복음) 16장 19절에 근거합니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장 19절)
앱스의 좌우로는 네 개의 작은 경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이한게 양쪽 측랑을 따라서 위치한게 아니라 앱스의 양옆으로 자리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초기 바실리카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측랑은 이동과 전시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경당을 앱스의 양옆에 배치는 하는 방식입니다.




Hugo DK,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성 베네딕도는 베네딕도 수도회의 창시자로, 성 바오로 대성전이 베네딕도회에서 관리되기 때문에 이 경당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순례했을 때는 단체로 급하게 순례를 하고 미사를 드려야하는 상황이라 실제 보지는 못했습니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을 하늘에서 보면, 일반적인 ‘십자가’(라틴 크로스) 형태가 아니라,
트랜셉트(Transept, 십자형 교차부)가 앱스(후진) 바로 앞에 붙어 있는 T자형 평면임이 특징입니다
이 구조는 고전적 바실리카(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전형적인 평면 중 하나입니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는 원래 로마의 공공건물(법정·시장 등)에서 유래한 직사각형 평면에 한쪽 끝에 반원형 앱스가 붙은 구조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트랜셉트가 추가되어 T자형(혹은 라틴 크로스형)으로 발전했습니다.
- T자형 평면: 긴 네이브(중앙 회랑)와 그 양쪽의 측랑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다가, 끝부분에 넓은 트랜셉트가 앱스 앞에 붙어 T자 형태를 이룹니다.
- 라틴 크로스형 평면: 트랜셉트가 네이브 중간쯤에 교차해 십자가 형태가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은 트랜셉트가 네이브 끝, 앱스 바로 앞에 붙어 있는 T자형 평면을 보이며,
이는 4세기~5세기 고전 바실리카 양식의 대표적 형태입니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면서 트랜셉트가 네이브 중간으로 이동해 십자가 형태가 강조된 라틴 크로스형 평면이 유럽 대성당의 표준이 됩니다.



성당 측면의 기둥 위 프리즈(Frieze)에는 초대 교황부터 현재 교황까지의 원형 모자이크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재 교황님의 초상화에만 조명이 들어와 있는데, 이는 '지금 살아 있는 교황은 오직 한 명'이라는 의미와 함께 ‘교회의 계승성’을 상징합니다.
<잠깐 용어 정보>
*프리즈(Frieze)
┌──────────────┐ ← 천장
│ 코니스 │ (Cornice: 가장 위 마감선)
├──────────────┤
│ 프리즈 │ (Frieze: 그림이나 조각이 있는 띠 공간)
├──────────────┤
│ 아키트레이브│ (Architrave: 기둥 위 받침보)
└──────────────┘
↑
기둥 (Column)
이 세 요소를 묶어서 엔타블러처(Entablature) 라고 부릅니다.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 누구보다 뜨겁게 복음을 전했던 바오로 사도.
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이 성전은, 우리에게 변화의 용기와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가진 약함과 상처, 과거의 실수마저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는 새로운 사명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오로 사도의 삶이 보여줍니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하며, 여러분도 잠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제 포스팅은 유튜브 영상이 중심이 되어 작성되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내레이션 대본, BGM 등 정말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들었으니 블로그 포스팅만 보지 마시고 꼭 유튜브 영상도 봐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유튜브에 담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추가하겠습니다.
이 순례기는 2024년 11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WYD 상징물 전달식 대표단에 촬영 스태프로 동행하며 했던 촬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WYD 상징물 전달식 대표단의 여정에 대한 영상은 유튜브 '서울 세계청년대회 WYD Seoul 2027'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따로 링크를 걸지는 않겠습니다. 검색해 주세요)
아무래도 대표단의 여정을 촬영하는 게 우선이어서 각 성당을 자세히 촬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간간히 제가 촬영하지 못한 장면들은 위키백과나 다른 사이트를 통해서 추가하였습니다.
특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은 마지막 날 오전에 방문했고 일정상 미사를 봉헌하기로 되어있는 성당이라 일정이 빠듯했던 게 있었습니다.
4대 성당 중 가장 외각에 자리하고 있고 성당의 오른쪽에서 진입했다면 공원과 함께 조금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왼쪽에서 진입하면서 조금 아쉬운 모습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순례영상은(유튜브 기준) 바오로 사도의 순교지인 트레 폰타네 수도원인데 그곳은 정말 온전히 순례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순례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순례했던 로마였는데 온전히 순례하지는 못했기 정해진 일정들이 중간중간 있었기 때문에 찍먹하고 온 느낌이라 꼭 다시 가고 싶은 로마였습니다.
지금 올라간 영상은 로마 순례기 4편에 해당하는 영상이고 앞으로 한 편에서 두 편정도 순례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올라간 순례기들도 여력이 된다면 포스팅을 해서 뒷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해외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 바오로의 순교지 "트레 폰타네" (5) | 2025.06.19 |
|---|---|
| 베트남 성지순례 (라방 성모발현성지, 짝께우 성모발현성지, 찌부성당 등) (1) | 2024.02.13 |
|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 개막미사 (WYD시리즈 3편) (0) | 2024.01.13 |
| 포르투갈 전성기 대항해시대의 역사 벨렝지구(발견기념비, 벨렝탑), 에그타르트의 탄생지 '제로니무스 수도원' (2) | 2024.01.13 |
| 성모 발현의 기적,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순례 (1) | 2024.01.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