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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https://youtu.be/ivTSOKwU19o?si=LKIWgrppUIL_5N6L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지난 1월 저는 성심여행사에서 주신 좋은 기회로 베트남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이고 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베트남에 천주교 성지가 있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베트남의 천주교 전래는 1533년 이냐시오라는 서양인이 포교를 위해 나타났다는 기록(흠정월사통감강목)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복음이 전해진 시기는 1615년 1월 18일 예수회 사제 5명이 호이안에 들어온 때부터입니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1625년부터 1886년까지 53번의 박해로 십삼만 명이 순교하였으며

1988년 6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17명이 순교성인으로 시성 되었습니다.

 

박해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끝이 났지만

1954년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나눠지며 천주교를 옹호하는 남베트남에서는 교세가 성장하였지만

1974년 사회주의체제로 북쪽에 의해 통일된 후 

베트남 교회는 엄격한 통제 속에서 7~8% 신자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4. 1. 22. 

1. 다낭 주교좌 성당 (Giáo Xứ Chính Toà Đà Nẵng) 

순례의 첫째 날 베트남 다낭에 도착한 순례단은

첫 번째로 다낭 주교좌성당을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후 전용 버스를 타고 호텔이 있는 베트남의 고도(古都) 후에(HUE)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2024. 1. 23.

2. 후에(HUE) 주교좌 성당 순례 (Phủ Cam Cathedral)

다음날 아침 먼저 후에(HUE) 주교좌 성당을 순례했습니다.

거대한 현대식 성당의 내부는 독특한 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다낭 주교좌성당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향을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문화가 반영된 베트남 교회 전례의 독특한 면으로 우리는 초를 켜지만 이곳 베트남에서는 대신 향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3. 후에(HUE) 베네딕토 수도원 (DAN VIEN THIENAN)

다음으로 우리가 순례한 곳은 후에 베네딕토 수도원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사원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요.

베트남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반영한 이색적인 모양이었습니다.

우측의 7층석탑은 칠성사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의 기도시간

 

순례단은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수사님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순례단은 성모님 발현 성지라방으로 이동합니다.

 

 

4. 라방 성모 발현 성지 (La Vang) 

현재 베트남의 꽝찌(Quang Tri)와 꽝빈(Quang Binh) 지방을 중심으로 베트남 중, 북부를 장악하고 있던 깐틴트(Canh Thinh)왕의 통치 시기인 1798년~1800년은 베트남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힘든 박해 시기였습니다. 

 

신자들은 혹독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후에로부터 40km 떨어진 

베트남 중부 꽝찌(Quang Tri) 지방의 작은 마을

라방(La Vang)의 보리수나무(banian tree) 숲으로 들어와 힘들게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신자들은 라방 숲 속에 모여 무서운 박해의 위험과 질병, 굶주림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매일 저녁 보리수나무(banian tree) 아래에서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성모님께서 밝은 빛에 둘러 쌓여 베트남 전통 여왕의 복장을 하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옆에는 횃불을 든 2명의 천사 같은 어린이와 함께 발현하셔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무엇을 나에게 청하였어도 나는 너의 기도를 이미 들어 허락하였으며, 

앞으로도, 누구든지 이곳에서 나에게 청하는 모든 이의 기도를 나는 들어줄 것이다.”

 

성모님의 발현은 박해 속애서 힘들어하는 신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영적인 치유)

질병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적인 허브(herb)를 이용하여 육신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도록

치유의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1961년 8월 22일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성모님의 발현 성지 바실리카로 지정

 

 

본래 대성당은 1972년 월남전쟁 때 미군폭격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종탑만 남아있고

뒤에 새로운 대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순례단은 성지에서 함께 야외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개인 기도와 순례 시간을 가진 뒤 저녁에 다시 성시간을 위해 성지에 모였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 찬미와 경배를 하며 순례단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2024. 1. 24.

다음날 아침, 순례단은 성지에서 아침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성지를 떠나기 전 라방 성모님께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고

다음 순례지인 찌부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5. 찌부성당 (Tri buu parich)

 

*찌부 순교탑

1885년 9월 7일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를 포함해 600명이 찌부성당에 감금되어 불에 타서 순교하십니다.

 

순례단은 함께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찌부 성당에는 당시 순교하신 성인 일곱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순례단은 성인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2024. 1. 25.

6. 짝께우 성모 발현 성지 (Our Lady of Tra Kieu)

베트남 고도 후에의 남쪽 꽝남(Quang Nam) 지방의 약 900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작은 마을 짝께우(Tra Kieu)에는 

브루이에레 신부님이 사목하고 있는 작은 성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박해의 물결이 거셌던 1885년 9월 1일 

반탄(Va Than)의 군인들이 성당을 공격하기 위해 사방을 포위하였고

무기도 없는 가톨릭 신자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브루이에르 신부님은 탁자 위에 성모상을 놓고 촛불을 켜고 이 모든 어려움을 성모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남은 신자들과 함께 성모송을 암송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당을 향해 발포한 대포들이 모두 빗겨져 나가 성당에는 한 발도 맞지 않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반탄군대의 포병 장교가 훗날 고백하기를 성당 꼭대기에 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서있었고

그 여인을 맞추려 대포로 조준하였지만 모두 빗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반탄의 코끼리 부대 지휘자의 증언에 따르면

코끼리를 이용하여 성당을 공격하려 하였지만 성당 꼭대기에 흰옷을 입은 여인이 서있었고

빨간 옷을 입은 천여 명의 아이들이 대나무로부터 내려와 행진해 오는 것을 보고 코끼리들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군인들은 모두 도망가고 짝께우 성당과 그 안에 교우들은 안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

이후 짝께우 성모 발현 성지는 베트남 주교회의 공인을 받고 1898년 성당을 건축하여 “믿는 자의 도움이신 성모님”께 봉헌하게 됩니다.

현재 성지가 있는 곳은 당시 반탄의 군대가 주둔하던 곳입니다.

언덕에 지어진 성지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성당이 바로

짝께우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성당입니다.

 

 

성심여행사를 통해 4일간의 베트남 성지순례를 마친 개인적인 소감은

단순하게 교회사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 역사와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함께 들으니 당시의 상황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의 우리에게 왜 베트남 성지 순례가 필요한지 깨닫고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제 채널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순례라고 생각하고 추천드립니다.

 

끝으로 이번 순례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성심여행사에 감사드리며

성모님의 은총이 영상과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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