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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일  : 2021. 02. 10
-명동 주교좌 성당 : 서울시 중구 명동길 74
-이벽의 집터 (한국 천주교회 창립터) :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
-김범우의 집터 (장학원 터) : 서울시 중구 을지로 66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한국천주교회의 상징 명동성당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명동성당이 자리잡은 대지는 당시 종현(鐘峴,종마루)이라 불리던 고개입니다.
종현은 행정구역으로 명례방(明禮坊)에 속해있었고 
명례방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던 명례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명동(명치정)                                                                     해방 이후 명동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리었고 
해방 이후 명동이라 불리었습니다.


1784년 조선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1756~1801)가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합니다.
이벽, 권철신, 정약전 등 남인 학자들은 수년전부터 천주교 서적을 통해 서학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친구 이벽의 요청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옵니다.


대게 그리스도 신앙은 선교사로부터 전파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지은 교리서를 공부하면서
자생적으로 신앙을 일으키게 됩니다.

* 이벽의 집터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
1784년 9월(음력) 현재 명동 부근인 수표교 근방 이벽의 집에서
이승훈은 친구 이벽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때부터 한국천주교회의 첫 신앙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수표교 공동체)

 

 

현재 이벽의 집터 표지석은 청계천 전태일기념관 건물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벽의 집은 청계천 건너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본래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나무로 만든 임시 수표교가 놓여 있습니다.

*김범우의 집터 (장학원 터) 서울시 중구 을지로 66
처음 이벽의 집에서 열리던 신앙공동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1784년 겨울부터는 명례방(현재 명동 인근)에 위치한 김범우의 집으로 집회장소를 바꾸게 됩니다.
이벽, 이승훈, 정약전·정약종·정약용 삼형제, 권일신, 권철신, 최인길, 지황 등이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갖기 시작하면서 '명례방 공동체'가 시작이 됩니다.

*명례방 사건(을사 추조 적발 사건)
1785년 어느봄 날 
이벽, 이승훈, 정약전·정약종·정약용 삼형제, 권일신, 권철신 등은
명례방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근처를 지나던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이 됩니다.
당시 참석자들은 형조로 압송이 되고 천주교 서적과 물건들도 압수를 당하게 됩니다. 

양반이었던 이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그중  
유일하게 중인신분이었던 김범우만 감옥에 갇혀 고문과 형벌을 받고
밀양 단장으로 유배됩니다. 유배를 가서도 천주교 포교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혹독한 매질의 여독으로 2년간 고생하다가 결국 순교하게 됩니다.

현재 명례방을 알리는 표석은 없고 
하나은행 본점 앞 장악원 터 표석 앞쪽을 김범우의 집터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천주교는  수차례의 박해를 겪으면서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순교한 끝에
1886년 한불수호조약(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현재 명동성당의 부지는 1883년부터(추정) 부분적으로 매입을 시작하여
1886년 한불수호조약 비준 전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매입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언덕위의 성당 건축문제는 정부 당국과의 분쟁으로
1888년부터 1890년1월까지 지연됩니다.

 

당시 종현위치가 조선임금의 화상이 모셔져있는 영희전의 주맥이라는 풍수지리적인 이유를 들면서 
정부는 토지소유권을 억류합니다.
당시에는 큰건물들이 없어서 경복궁,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고 뒤로 남산(목멱산木覓山))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중단되었던 공사는 많은 사람들과 교우들의 노력으로 재개되어
1890년 2월 주교관(사도회관)이 먼저 완공됩니다. 

 

당시 설계,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는데
건축기사, 설계가, 자재 모두 없었기 때문에 20여종의 벽돌을 직접 만들고(용산 연와소)
벽돌공과 미장공은 중국인(청나라) 기술자를 데려다 썼습니다. 

하지만 청일전쟁 때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등 여러가지 이유(코스트신부, 블랑주교 별세)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조선정부의 반대, 물자의 겹핍, 미숙한기술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1898년 5월 29일 축성식을 거행합니다. (주보 : 무염시태의 성모마리아)

명동성당 건축물은 한국천주교 공동체의 시작인 '명례방 공동체'를 잇고
서울 명동 한복판에 만들어져 완전한 종교 자유의 증거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1970년대부터는 '민주화의 성지'의 역할까지 하였습니다.

 

 

 

 

명동성당은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평면형은 라틴십자형 삼량식 구조입니다.
라틴십자가형은 세로길이가 가로길이보다 긴 모양의 전형적인 십자가 모양을 말합니다. (그리스십자가는 가로세로 동일)

평면 중앙에 신랑(身廊,네이브,nave)를 두고 좌우에 측랑(側廊,아일,aisle)을 둔 삼랑식 구조에
양쪽 트랜셉트(익랑,翼廊,transept)가 좌우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제대 뒤편에는 반원형 공간인 앱스(후진,後陳)가 있습니다. 
명동성당은 앱스 뒤쪽으로 제의방으로 쓰이는 회랑(복도)이 있습니다.

신랑(身廊,네이브,nave) : 성당입구에서 트랜셉트까지 부분
측랑(側廊,아일,aisle) : 신랑과 평행을 이루는 복도
익랑(翼廊,트랜셉트,transept) : 십자형 평면에서 좌우로 돌출된 부분, 신랑과 직각으로 교차되어 있는 회랑을 의미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높은 천장과 뾰족한 첨탑, 그리고 긴 뾰족아치의 창문 모양을 들수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보면 압도적인 천장의 높이를 느낄수 있는데요.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이 천국과 더 가까워지고자했던 바램을 담은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로사리오 15단 스테인드 글라스 (제대 위 앱스 5개창)
전통적인 묵주기도문인 (빛의 신비 추가 되기 전) 
15단의 묵주 기도문을 나타내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장을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고통의 신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모 승천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 
입니다.

 

 

 

*제대 뒤 14사도 제단화
12제자와 바오로 사도,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천장의 끝은 뾰족한 첨두아치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높은 건물을 만들때 둥근 아치를 사용하면 기둥을 더 굵게 만들어져야하는데
첨두아치로 만들면 힘이 양옆보다 수직방향으로 쏠리면서 
조금 더 가는 기둥을 활용할 수 있고 기둥 사이의 간격을 더 넓힐 수 있습니다.

 

* 늑골궁륭(CROISEE D'OGIVES)
첨두아치 모양의 천장을 보면 기둥과 기둥이 뼈대 모양으로 연결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갈비뼈모양으로 생겼다해서 리브rib라 부르고 늑골이라고 합니다.
늑골 굴륭아치 구조는 천장의 무게를 줄이고 하중을 기둥으로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 김대건 신부 전신상                                                               베네딕토 성인상 (구마의 성인)




* 지하성당 (구. 고해소)
지하성당은 5분의 성인과 4분의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되어있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
성 샤스탕 신부
성 모방 신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김성우 안토니오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이 에메렌시아
무명 순교자

 

* 사도회관(현재 서울대교구역사관)
사도회관은 명동성당보다 8년 먼저인 1890년 주교관으로 완공이 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가 현재는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내부의 전시물들은 촬영 금지라서 허락을 받고 전체적인 전시관의 모습만 촬영했습니다. 

화요일~주일 오전9시~오후5시까지 운영이 되며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3판기준)의 순례도장 중

 

김범우의 집터(21p)
이벽의 집터(32p)
103위 시성터(38p)
124위 시복터(39p)  도장은 이곳 서울대교구 역사관에서 찍을 수 있습니다.


명동 주교좌 성당의 순례도장은 교육관 1층에서 찍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의 주교좌 성당이자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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