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youtu.be/JbmiQVl1Q6Y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천주교 서울순례길에 속해 있는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잡히신 뒤 순교하시기까지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약 12.7km의 거리이고 시간은 5시간정도 소요됩니다.


순례길의 시작점은 우포도청(현 광화문 우체국)입니다.


1. 우포도청 (서울시 종로구 종로6 광화문 우체국 앞 화단)

 

김대건 신부님은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백령도에 도착했습니다.
중국 어선들을 통해 (중국에 계신) 신부님들께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체포가 되십니다.

 

이후 (황해감영을 거쳐) 한양 우포도청에 갇혀 
순교하시기 직전 3개월간 문초를 받으십니다.

포도청은 조선시대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화재예방 등 치안을 위해 만든 기관이지만
박해시대 때는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고 심문하는데 쓰였습니다.

우포도청등록(右捕廳謄錄)

*우포도청등록(右捕廳謄錄)
포도청 관할업무와 기록을 모은 문서. 박해기 체포된 408명의 신자들에 대한 심문 기록이 수록.

 


현재는 광화문 우체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체국 앞에는 우포도청 표지석과 천주교 서울순례길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김대건신부님은 열아홉번째, 스무번째, 스물한번째 서한을 작성 하십니다.
스물한번째 서한이 바로 '김대건 신부가 조선 교우들에게 보낸 마지막 회유문' 입니다.

 


이제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까지 이동을 할건데요.
참고로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 안내책자는 
명동성당 본관, 별관에 비치가 되어있고(사무실 문의)
서울 각 성지마다 대부분 비치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순례길' 어플을 사용하시면 
지도를 보면서 순례를 할 수가 있고
각 성지에 대한 설명도 볼 수가 있습니다. 

 

지방의 순례길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례길에 이정표가 설치가 된 경우가 많으나
서울 순례길은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특성상 이정표가 촘촘히 설치되지 못해서
지도와 어플을 보면서 각 지점까지 자유롭게 이동을 하시면 됩니다.
걸어가셔도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2.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서울시 중구 칠패로5)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습니다.
성지에 대한 자세한내용들은 각 성지 영상을 참고하시고
이번 순례길에서는 김대건 신부님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박순집 증언록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님은 우포도청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 네거리를 거쳐 당고개를 지나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박순집 증언록

* 박순집 증언록
박순집 베드로가 천주교 신자들의 행적을
교회법정에서 증언했고 시복재판의 
기록서기를 맡았던 로베르 신부가 필사하여
남김. (총3권)

 

※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휴관이라 들어가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당고개 순교성지로 이동하겠습니다.

 


3. 당고개 순교성지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 139-26)

이곳 당고개도 김대건 신부님께서 
새남터로 향한 참수길에 잠시 쉬어갔던 곳입니다.

<박순집 증언>
"문초와 형을 받은 사정은 모르지만, 그해 7월(음력) 형장으로 가실 때 
죄인이 서소문 밖에서부터 새남터까지 따라갔으며,
당고개에 이르러 한참 지체할 때 김신부님께서 들것에 앉아 있는데,
땀이 흐르고 상투가 풀어지자 운반하던 사람이
다시 상투를 틀어주던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김신부님은 보라색 겹저고리를 입으셨고,
머리를 들어 좌우를 살펴보셨습니다."
<기해 · 병오 순교자 시복조사기록>회차86 (1885년 1월 27일)

이곳 당고개순교성지는 최양업 신부님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 복자가 순교한 곳이라 어머니의 성지라고도 불립니다.

 

※ 성지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새남터 순교성지로 이동하겠습니다.

 


4. 새남터 순교성지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80-8)


신부님께서 군문 효수형을 당한 새남터 순교성지입니다.
조선시대에 순교한 성직자 14분 중 11분이 순교한 곳입니다.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이었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증언>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조선인 최초의 방인사제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26세의 나이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절두산 순교성지로 이동하겠습니다.

 



5. 절두산 순교성지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양화진(楊花津) / 겸재 정선(鄭敾) 作 

절두산의 본래이름은 잠두봉이었습니다.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의 목을 잘라 처형을 하면서 
머리를 자르는 산이라는 절두산이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00년 뒤인
1946년부터 '순교자 현양 위원회'를 결성하고
10년간의 모금활동을 통해
1956년 양화진에 부지를 매입하면서 절두산순교성지의 성역화가 시작됩니다.

 

한국의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

 


김대건 신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1972년에 김대건 신부 기념동상이 광장에 세워졌습니다.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 

 

 

 

 

코로나로 인해 성당이나 기념관의 문이 닫혀있거나 
사전 예약을 받아야 미사에 참여가능한 성지가 많으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희년 전대사 수여 조건 중에 
오늘 걸은 순교길도 한가지의 항목에 해당이 됩니다. (통상조건 충족 후)

 


지금까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이하여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오늘도 제 영상을 봐주신 모든 분들과
몸이 불편하신 분들, 병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유튜브 채널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AjlBRKQmWImUOoDmTrXxg 

구독하시고 알람체크해주시면 영상업로드 될때마다 빠르게 보실수있습니다.

제 채널 구독 안하셨으면 구독 부탁드립니다.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MAjlBRKQmWImUOoDmTrXxg

네이버TV https://tv.naver.com/peterle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