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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 순교자 성지 (부산교구) : 경남 밀양시 사기점길 50-100

 

드디어 167곳의 성지 중 마지막 성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김범우 순교자 성지입니다.

김범우 토마스



김범우는 중인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773년 역과 증광시에 합격하여  (한학우어별주부(漢學偶語別主簿))
역관으로 중국을 왕래하며 새로운 문물을 들여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학에 관심이 있던 젊은 학자들과 친하게 지냈고
이벽의 권면으로 천주교에 입교하게 됩니다. 

 

명례방공동체


이벽, 이승훈, 정약전, 정양용, 정약종 등 초기 천주교 신앙 선조들과
한국교회 최초의 신앙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를 만들고
자신의 집을 집회 장소로 제공을 했습니다.

이벽의 주도로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 집회를 가지면서
신자들은 점차 늘어나게 되고 1785년 봄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포졸들에 의해
집회가 발각이 됩니다.
이를 '을사 추조 적발 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라 합니다.

사대부가의 자제들이 대거 붙잡혀 오자 형조에서는
중인 신분이자 집회 장소 제공자였던 김범우만 남겨두고 참석자들을 훈방합니다.

김범우는 감옥에서 형벌을 당하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각종 고문과 형벌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으며
결국 단양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김범우의 유배지에 대해서는 충청도 단양과 경남 밀양의 단장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와 사학징의(邪學懲義)에는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김범우의 묘가 경남 밀양의 단장면에서 발견되면서 
김범우의 유배지가 단장이라는 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단양에서 유배를 했다면 죽은 뒤 후손들에 의해 밀양으로 이장되었을 것이고
밀양에서 유배를 했다면 묘의 위치가 근거가 될 것입니다.

김범우는 유배된 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문 당할 때 맞은 상처가 악화되면서 유배된 지 2년 만인 1787년
37세의 나이로 순교하게 됩니다. 

김범우는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 증거자라고 불립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뒤에 숨지게 되면서 순교로 불리지는 못했으나
최초의 순교자였던 진산사건의 윤지충, 권상연보다
4년 앞서 순교를 한 최초의 순교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김범우의 순교자 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거대한 돌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좁고 경사가 있어 운전하실 때는 반대편에서 나오는 차량에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성모동굴성당

*한국천주교성지순례책자 (3판)
순례 도장은 성당 출입문 왼쪽 벽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성모동굴성당의 십자가 상은 마치 세개의 돌을 모아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김범우 묘를 파묘했을 때 그 안에 매장된 돌의 모습이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이를 형상화하여 만든 모양이라고 합니다.


성당을 나와 김범우의 묘를 향하다 보면
한국 천주교회사를 새겨놓은 표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범우의 묘

묘가 발견된 뒤 확인을 위해 파묘를 했는데 
무덤 속 관자리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놓여진 돌 3개와 치아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시대에는 십자가와 성물이 귀한 시대여서
대신 돌을 넣어서 상징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육관 피정의 집

이렇게 김범우 순교자 성지를 끝으로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 167곳의
성지를 모두 한 번씩 소개해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성지순례를 비롯하여 사회교리 시리즈, 아름다운 성당, 도보순례길 등
다양한 영상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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