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손골성지 (수원교구)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437번길 67
우리나라에 교우촌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신해박해(1791년)이후부터 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서울, 경기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나 충청도에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방에서도 박해가 일어나자 지방에 살던 신자들도 박해를 피해 이주하기 시작했고
더 멀리 경상도나 전라도로 피신하기도 했지만
서울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해박해(1839년) 이전에 이미 서울 가까이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손골성지도 기해박해 이전이나 직후에 생긴것으로 추정됩니다.
1831년 조선 대리감목구가 설정되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였고
초기에 서울 중심으로 사목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사나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신부들 가까이에 있어야되서
서울 근교에 교우촌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서울근교의 교우촌에서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기 시작했고
손골성지에서도 여러 선교사들이 거처가며 선교준비를 하고
피정과 휴식을 하는 등 중교한 선교거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 도리 신부상과 성 오매트르 신부상
특별히 손골성지는 성 도리신부와 성 오매트르 신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 성 도리 헨리코 (Dorie Henry, 1839-1866)
도리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뒤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 성 오메트르 베드로 (Aumaitre Peter, 1837-1866)
오매트르 신부는 손골과 지금의 수원교구 일대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갈매못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두 성인 모두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제가 성지를 너무 일찍 방문해서인지 성당은 닫혀 있었습니다.
성당옆으로는 순교자들의 길이 있었는데요.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7개의 비석이 보였습니다.
무명순교자의 묘
성지사무실 (앞 스탬프)
사무실 앞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3판)
성도리 기념관, 손골기념관 모두 잠겨있었습니다.
도리신부 순교비
맨위 돌십자는 신부 부모가 사용하던 맷돌로 만들어졌는데
십자가를 두개 만들어서 하나는 도리신부 생가에 걸려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AjlBRKQmWImUOoDmTrXxg
구독하시고 알람체크해주시면 영상업로드 될때마다 빠르게 보실수있습니다.
제 채널 구독 안하셨으면 구독 부탁드립니다.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MAjlBRKQmWImUOoDmTrXxg
네이버TV https://tv.naver.com/peterlee
'한국의 가톨릭 성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서울순례길 순례자 여권 세트 언박싱, 9월愛동행 (0) | 2020.08.21 |
---|---|
신암리 성당, 의정부의 오래된 교우촌이자 하느님의 종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가 태어나고 자란 곳 (0) | 2020.08.19 |
머리가 없어 무두묘(無頭墓)라 불리던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묘' (0) | 2020.08.06 |
[거제도 성지순례]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 (0) | 2020.08.03 |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정확한 성지 위치 지도 설명, 도장 위치* (0) | 2020.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