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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 성가성 성지 (의정부교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698-44

성지순례일 : 2020. 11. 20



마재는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곳입니다.

나주정씨 5대조 정시윤이 관직 은퇴 후 가족과 함께 마재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은 마재마을에 일가를 이루게 됩니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 가계도



정씨 형제들의 가계도를 보면

 

부친 정재원과 첫번째부인 남씨 사이에서 정약현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두번째부인 윤씨 사이에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이 태어났습니다.



맏형 정약현은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문을 지켰지만 그의 주변은 초기 교회의 핵심인물들이 가득했습니다.

부인 이씨의 동생이 한국천주교 창설 주역이었던 광암 이벽 세례자요한 이었고

사위는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였습니다.

이로 인해 첫째딸 정명련(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로 유배되어 노비로 생을 마치고 (대정성지 편 참고)

손자 황경환은 어머니와 떨어져 추자도에서 생을 마칩니다

셋째 딸 정조이와 사위 복자 홍재영 프로타시오(복자 홍낙민 루카의 아들), 손자 홍봉주 모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합니다.

처남과 사돈, 형제들이 초기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었고 천주교로 폐족이 된 집안을 지키려 아우의 시신까지 거부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정약전 (1758-1816) : 정씨4형제 중 둘째            복자 정양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                   정약용 세례자요한 (1762-1836)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는 두번째 부인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매형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입니다.

 


* 정약전 (1758∼1816)

정약전은 동생 약용과 함께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 명례방 집회에 참석하는 등

초기 천주교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를 대가로 사형만 면하고 신지도로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황사영 백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한양으로 불러와 조사를 받게되고 이후 더 멀고 험한 우이도로 유배지를 당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칩니다.

유배생활 중 흑산도 인근의 어류와 수중생물을 기록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남겼습니다.

(자산어보(玆山魚譜) : 조선시대 최고의 해양생물학 백과사전 )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형 약전, 동생 약용보다 늦게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나 

형제들 중 가장 초기교회에 헌신하였으며 교리지식이 해박하여 당대 최고였다고 합니다.

형제들이 배교하였을때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주문모 신부 입국 후 명도회장으로 임명되어(명도회 초기회장) 전교활동에 힘썼습니다.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말《주교요지(主敎要旨)》를 지었습니다. (우리말로 된 최초의 교리서)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이승훈, 최창현, 홍낙민 등과 함께 순교합니다. 

부인 성녀 유 체칠리아, 아들 복자 정철상(哲祥), 성 정하상(夏祥), 딸 복녀 정정혜(貞惠) 모두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였습니다.

* 복자 정철상 가롤로 (?~1801) : 1801년 5월 14일 서소문 밖 순교

 

 

*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1797~1839) : 1839년 12월 29일 서소문 밖 순교 

* 성녀 유 체칠리아 (1761~1839) : 1839년 11월 23일 고문과 형별의 여독으로 옥사, 순교

​* 성 정하상 바오로 (1795∼1839)  

 

특히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1801년 신유박해로 초기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이 순교하거나 유배당한 상황에서 최방제, 김대건, 최양업 등 신학생을 선발하고 외국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9차례나 북경을 방문하는 등
조선교회를 독립된 교구로 발족케하고 재건하는데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때 체포 되어 가혹한 문초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선교사들의 은신처를 숨겼고  결국 1839년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 체포되었을때 미리 써놓은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올려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알리고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가 아님을 강조하였는데 
19세기 중반 천주교 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교리에 대한 이해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이후 홍콩에서 출판되어 중국의 선교에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 상재상서(上宰相書) :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으로 박해를 받는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쓴 최초의 천주교 호교론서.




* 정약용 세례자요한 (1762~1836)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후기의 천재 실용주의 학자였습니다. (실학자, 문학가,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

형 정약전, 정약종, 이벽, 이승훈 등과 함께 천주교 창립 주역이었고

관직에 오른뒤 정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천주교에 연류되어 있다는 노론벽파의 정치적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고

결국 배교를 하고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신유박해가 있기 전 배교를 하였으나 1818년 유배지에서 돌아온뒤 

배교를 반성하고 참회하였다는기록이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있습니다. 

1836년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하였습니다.

정약용이 배교 후 복교를 하지 않았다는 학설도 있습니만  분명 정약용의 삶에서 정조와 천주교는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정약용에 대해서는 이후에 수원성지 도보순례길에서 다시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마재성지는 일가족이 모두 순교와 시복ㆍ시성이라는 성가정의 모범을 보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와 

부인 성녀 유 체칠리아 (유선임, 유조이),

아들 정철상 가롤로 복자, 정하상 바오로 성인, 

딸 동정녀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가족을 기념하여 봉헌된 성가정 성지입니다.

큰아들 정철상 가롤로 복자 모자이크 벽화

 

 

정약종 가족5명과 성모님이 함께 계신 성가정 모자이크 작품입니다.

가운데 성모님을 중심으로 

좌측의 두분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 정철상 가룰로 복자이고

오른쪽 세분이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정하상 바오로 성인, 유 체칠리아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입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 (3판)  

한옥성당인 도마성전입니다.

순례도장은 성전 밖 모서리에 비치 되어있습니다.

성가정 은총의 십자가

기도지향을 종이에 써서 성가정 은총 십자가에 꽂으면 성지신부님과 순례객들이 함께 기도를 해줍니다.


성물판매와 만남의 방이 있는 명례방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로 운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약종동산으로 넘어가니 복자 정약종 · 정철상 부자상 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마재 성가정 성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의정부교구 지만 오히려 수원교구 구산성지, 양근성지와 함께 방문하기 좋아서

세 성지를 한번에 방문하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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