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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d8fZADTqy8


방문일 : 2020年 11月 20日


배티성지 (충주교구)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 (충청북도 지정문화재 제150호)






이곳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뜻입니다.


고개 여기저기에 돌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배티, 삼박골, 정삼이골 등 기록된 교우촌만 15곳이 넘습니다.


그래서 이곳 배티는 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바(비밀교우촌)이라 불립니다.






오늘은 성지 내 3.5km의 순례코스를 돌면서 성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위 지도 빨강색 길입니다.




 


첫번째로 이곳 최양업 신부 기념관인 대성당에서 시작해서 


박물관, 신학교, 순교자묘를 거쳐서


산길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대성당까지 오는 코스입니다.






 

순례도장은 성지에 들어서면 보이는 지도와 표지판 옆에 있습니다.


인주가 닳아서 잘 안찍히니까 뒤에 소개해드리는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성당'에서 찍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 (3판) 


※책자 구입은 네이버 검색을 하면 나옵니다.





 



*최양업 신부 기념관(대성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2011년 기공, 


2012. 4. 15 봉헌



첫번째로는 갈곳은 최양업신부기념관(대성당)입니다.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성당입니다.






들어가자마자 성당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면 


거대한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을 볼수있습니다.


최양업신부님의 모습과 박해시대 교우촌 신자들의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성당안에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가 펼쳐져있습니다.


우측 맨뒤에서부터 제대를 지나 좌측 맨뒤까지 ㄷ순서로 보시면 됩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신부님의 생애에 대한 설명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설명합니다.


 



배티신학교 초대교장이었던 성 베르뇌 주교와 최양업신부의 부모이신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복자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입니다.



1.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21년 홍주 다리골(현 청양 다락골)에서 탄생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신앙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2.1836년 모방신부에 의해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동료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신학생 서약을 하는 모습입니다.



3. 성 정하상 바로로 일행의 안내로 압록강 너머 샤스탕 신부를 만나고


1837년 마카오에 도착하여 사제 수업을 시작합니다.


4. 동료 최방제 신학생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졌고


1839년 아편으로 인한 마카오 소요로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롤롬보이로 피신했다가


다시 마카오로 귀환합니다. 



5 기해박해로 수리산 교우촌에 살고 있던 부모와 아우들, 신자들이 체포되어


옥으로 끌려갑니다.


6. 아버지 최경환 성인이 모진 고문과 형벌로 옥에서 순교하고


어머니 이성례 복자는 옥중에서 젖을 물리지 못해 죽어가는 막내아들을 보며


고통과 갈등을 겪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자식들 걱정 때문에 이성례 복자는 잠시 배교를 했었지만


결국 스스로 옥으로 돌아옵니다. 




7. 옥에서 풀려난 자식들이 망나니를 찾아가 어머니를 


단칼레 베어 고통을 덜어달라고 부탁합니다.


1840년 이성례 마리아는 당고개에서 동료들과 함께 순교합니다.


8. 고아가 된 아우들은 모두 헤어져 친척집에서 자라고


1842년 마카오를 떠난 최양업은 중국 소팔가자에서 사제수업을 계속합니다.




9. 소팔가자에서 동료 김대건에게 부모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됩니다.


1844년 소팔가자 성당에서 동료 김대건과 함께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습니다.


10. 귀국을 위해 훈춘(연변인근)까지 갔다가 체포되었지만 3일만에 풀려났고


소팔가자로 귀환해 중국인 신학생을 지도합니다.




11. 1847년초 봉황성 변문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뒤


기해박해,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합니다.


이후 프랑스 군함을 타고 서해 귀국로를 탐색했으나 난파로 인해 


상해로 귀환합니다.


12. 1849년 4월 15일 상해 장가루 성당에서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습니다.


요동의 차구 성당에서 중국교우들을 상대로 7개월간 첫 사목활동을 합니다.





13. 1849년 12월말 봉황성 변문에서 조선교회 밀사들을 만나


13년 만에 고국땅을 밟고 서울에 도착하여 다블뤼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충청도로 가서 페레올 주교와 상봉합니다.


14. 1850년 전국 다섯개 도에 흩어져있는 교우촌을 순방합니다.

(최양업 신부의 초기 주요 사목지는 

충남 부여 도앙골과 충북 진천 동골, 절골이었습니다. 

1849년 12월 하순에 귀국한 최 신부는 

6개월 동안 충청ㆍ전라ㆍ경상ㆍ경기ㆍ강원 전국 5개 도를 돌면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습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할 교우촌은 5개 도내 127개소로 전체 교우촌(1850년 말 185개소)의 

거의 70%에 달했습니다.

1853년 여름 다블뤼 신부의 뒤를 이어 배티 신학교의 지도를 맡게 됩니다.



15. 배티신학교에서 신학생 3명을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보내고


한글 천주가사와 기도서 교리서를 편찬합니다.


16. 경신박해를 피해 겨울밤의 산골짜기를 헤매다 

죽림 교우촌(언양 죽림굴)에 숨어 마지막 서한을 작성합니다.




17. 한달에 나흘밤도 자지못할만큼 강행군을 하셨던 신부님은


결국 1861년 6월 15일 과로와 장티푸스로 쓰러지시고


진천의 한 교우촌에서 선종하십니다.






자칫 모르고 지나 칠 수가 있는데


대성당에 방문하신다면 제대만 보실게 아니라


꼭 양옆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나하나 보면서


신부님의 삶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에는 각 장면의 설명이 쓰여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 박물관 (순교ㆍ박해 박물관)


2014. 4. 11 개관



제가 방문했을때는 오후1시부터 오후5시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운영시간을 확인하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저도 오전에 방문을 해서 오후 1시까지 기다려서 들어갔습니다.



촬영이 허용이 되어서 내부를 촬영했는데


박물관이 아주 잘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신부님과 함께 걷는 길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최초의 신학교(성당 겸 사제관)


1850년 설립, 2001년 12월 2일 복원 봉헌





1850년 페레올 주교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자 성당이며 사제관입니다.


다블뤼 신부가 신학교 교장으로 신학교를 정착시켰고


1853년 여름부터 최양업 신부가 이어 맡아 이곳에서 신학생을 지도하고


기도서ㆍ교리서를 편찬 했습니다.


신학교가 문을 닫은 뒤에도 


최양업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페롱 신부 등이 거처했습니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증거자 최양업 신부 복자 이성례 마리아 흉상





*병인박해 순교자 유 데레사 부부 묘


 


*무명순교자 14인 묘



* 복자 장 토마스와 동료 7위 순교자 현양 조형물과 복자 오반지 바오로 묘


*무명순교자 6인 묘



*산상 제대

*양업영성관(피정의 집)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성당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 1996년 기공, 


1997년 4월 15일 봉헌, 배티성지 첫 성당





1층에는 순례자 도장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성지 입구에 있는 도장보다 이곳의 도장이 상태가 좋습니다.)



*1층 소성당


오른편에는 성체조배실, 왼편에는 성인유해 경배실



*성체조배실



*성인유해 경배실


복자 오반지 바오로 유해(오른쪽 발목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해가


최양업 신부 초상화와 같이 있습니다.



*2층 성당




순례길까지 모두 돌아보았는데요.


마지막으로 성지에서 약 3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가 있습니다.




차량으로 비포장 오르막 길을 진입하시면 주차할수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지난 문경성지순례 편에서 말씀 드렸던 


칼레 신부가 병인박해 때 이곳 삼박골에서 10여일 동안 은거했었습니다.


칼레 신부가 떠난 후 포졸들이 습격을 했고


진사 이호준 요한의 딸과 부인이 체포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모녀의 묘가 이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 블로그 글 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도 꼭 봐주세요. 열심히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래는 유튜브 채널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AjlBRKQmWImUOoDmTrX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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