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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일 2020年 7月 4日


갑곶순교성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35(갑곳리)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강화도 성지순례2부로 갑곶순교성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육로에 대한 검문이 강화되었습니다.

천주교 유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선교사의 유입을 위해 해로를 개척하게 됩니다.



1845년 5월 1일 김대건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를 비밀입국 시키는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강화도 갑곶까지 오게 됩니다.



이후 갑곶으로 1856년 베르뇌주교, 프티 니꼴라, 푸르티에 신부가 입국하고

1857년 페롱 신부등이 입국하는 비밀통로가 됩니다.


이 곳 갑곶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효수형을 당한곳인데요.

1866년 병인박해 때 강화도에서는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습니다.


1866년 7월 12일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 가 대동강까지 올라와서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였고 

거절당하자 평양군민들이게 총과 대포를 쏘며 행패를 부렸는데요. 

평양군민들은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처형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1871년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는 신미양요를 일으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빌미로 천주교를 더욱 박해하였고

이로 인해 갑곶나루터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어 말뚝에 달아매는 효수터가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함대를 왕래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첫번째로 이곳 갑곶진두에서 효수되었습니다.



1866년 10월14일에는 프랑스 함대가 프랑스 선교사들 처형을 빌미로 강화도에 침입하는

병인양요가 발발하게되는데요.



신미양요, 병인양요를 겪으면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는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인천교구는 문헌상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지금의 갑곶성지를 조성했고

순교자들의 행적증언자이며 인천교구 역사에서 빠질수 없는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성지에 안장하였습니다.



성지가 규모가 있는편입니다.

성지입구에 보면 바깥에 순례자도장을 찍을수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으면서 잘못된 도장을 먼저 찍었었습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 (3판)





둥근 산봉우리 모양의 기념성당입니다.




성당 내부




사무실 앞에서도 순례자도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천국의 문'이라고 봉안당과 연결됩니다.




성당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서 성물방과 화장실을 지나면 야외로 연결이됩니다.

성경구절이 적혀있는 계단을 지나서 왼쪽으로 가면 십자가의 길이 나옵니다.








초봉헌대 옆에 크기별로 십자가들이 비치되어있는데요.

직접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수가 있습니다.

저는 큰 십자가를 지고 걸어봤는데 십자가를 따라오는 모기가 너무 많아서 결국 다시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중간 중간에 스탬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용도는 잘 모르겠으나 이 스탬프는 성지 순례 스탬프가 아니니까 저처럼 실수로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책자에 찍는 일 없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야외 미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옵니다.

끝에는 제대와 예수상이 보입니다.






이제 순교자 삼위비와 박순집 베드로 묘로 올라가겠습니다.

신미양요 때  미국함대를 왕래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넋을 기리는 3위비 입니다.







박순집 베드로 묘

십자고상 뒤에는 박순집 베드로 묘가 있습니다.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

박순집 베드로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순교자는 아니지만 어느 순교자 못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새남터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목숨을 걸고 찾아서 안장했으며

순교자들의 행적을 정리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박해시대 이후 유해발굴과 시복,시성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890년부터는 인천 제물포로 내려와 전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911년 6월 27일 (82세)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하였는데

선종할때 방안에 향기가 풍기고 집지붕으로 광채가 비쳤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무릎을 꿂고 박베드로가 성인이 되었다고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독쟁이(인천 용현동)에 묻혔다가 서울 절두산순교자기념관, 인천 도화동성당을 거쳐

2001년 9월 이곳 갑곶순교성지 내에 천묘하였습니다.







다시 성지 입구로 돌아와서 왼쪽으로 내려가보면 지하성당이 나옵니다.





인상적였던게 기도를 적어서 독서대앞 십자가에 꼽아 놓으면 신부님께서 그날밤 지향기도를 해주십니다.

저도 지향을 하나 적었습니다.





기념성당 뒤쪽으로는 피정의 집(A관, B관)이 보이는데요.

아직 공사중인 곳도 있고 이용자가 아니면 출입을 금하고 있어서

따로 촬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갑곶순교성지를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 밤에 깜짝 라이브를 테스트 겸 시도를 해봤는데요.

여러분들 댓글의 반응을 보고 괜찮다면 다음번에는 미리 한번 공지를 하고 라이브를 해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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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끝까지 영상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혹시 구독안하셨으면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 영상을 봐주신 모든 분들과 몸이 불편한 분들, 병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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