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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tqidxAOaJQ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산막골, 작은재, 지석리 성지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성지순례일 : 2020年 5月 21日

기획/촬영/편집/나래이션 이민호 베드로




산막골성지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 81번길 119 (금덕리234)




작은재공소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산 11

작은재줄무덤 : 충남 서천군 문산명 수암리 산79-1 (산78과 산79-1경계)




지석리 :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368-1





산막골과 작은재 모두 집입하는 도로가 길고 좁으니까

운전이 서투신 분들은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천방산 산막골은 1839년 기해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서 모인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곳입니다.


서천 지역의 여러 교우촌 중에서는 산막골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황석두 루카 성인이 

1856년 충북 연풍에서 이주해서

1866년까지 10년을 살았던 곳이고

다블뤼 주교와 페롱신부의 사목활동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페롱신부는 1858년부터 이곳에서 은거하며 황석두 성인으로부터

한문과 조선문화를 배우며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

<황석두 루카 (黃錫斗)>

황석두 루카 성인은 복사이자 교우촌 회장이었으며 교회서적 번역 등에 힘쓰셨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갈매못에서 순교하셨습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에 대해서는 갈매못성지 편에서 언급을 한적이 있습니다.

다음번에 연풍성지를 촬영하고 나면 한번 더 길게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페롱 신부>

프랑스인 페롱신부는 경상도 서북부 지방에서 전교활동을 하였고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있다가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중국 산둥으로 탈출합니다.

다시 조선으로 입국하면서 독일상인 오페르트를 도와

덕산사건(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원군 묘 도굴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본국으로 송환됩니다.

아버지의 유골을 인질로 삼아 대원군에게 압박을 넣겠다는 의도로 벌인 행동이었으며

부친의 묘 도굴사건으로 대원군의 천주교에 박해는 오히려 가중되었고

결국 6대 조선교구장 리델주교에 의해 페롱신부는 조선으로 재입국이 금지됩니다.


*산막동 순교자

황기원 안드레아   (1866.09)치명

황천일 요한         (1866.09)치명

김요셉 공소회장   (1866.12)치명

김 안드레아         (1867.02)치명

이경서                (1869.10)치명

박정로 야고보      (1869.10)치명




성지도장은 산막골 비석 앞에 작은 우편함속에 있습니다. *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제3판, 2019.6.30발행)




계단위로 올라가면 작은 건물이 있는데요.

순례자 쉼터로 보였습니다.

이날은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본래 작은 비석과 성모상밖에 없었던 성지였는데

지금은 큰 안내비석을 십자가의 길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 산막골성지, 회개와 피정의 땅





야외제대에는 황석두성인의 동상과 십자고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옆에는 운치있는 아름다운 집이 보였는데요.

딱히 안내 표지판은 없는걸로 봐서 그냥 교우분의 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마스크를 썼어도 외지에서온 사람이 인사를 하는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기척을 내지않고 조용히 겉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이제 작은재공소와 작은재줄무덤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저는 차량을 통해서 이동을 했는데요. 

책자보다 정확한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작은재공소는 정확하게 

작은재공소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산 11

를 찍고 가시면 작은재 공소가 있던 터가 나옵니다.




*작은재공소(띠안말)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산 11

작은재(띠안말)역시 박해를 피해 내포,서울,경기지역에서 내려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살던 곳입니다.

(1884년 만덕공소로 설립되어 마을이주)


*작은재 순교자

김 펠릭스 (1866.10)

임 바오로 (1866.09)

박 시몬 (1868.05)






작은재 공소에서 산위로 임도를 따라 고갯마루에 오르면 작은재줄무덤이 나옵니다.

정확한 주소는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79-1 (산78과 산79-1경계)' 입니다.




*작은재줄무덤 

작은재공소터와 독뫼공소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무명순교자들의 줄무덤(약30여기의 작은 무덤)이 있던 자립니다.

1994년 천마산 산림도로 포장공사를 할때 유골들이 십자가

묵주 등 성물과 함께 출토 되었는데 

연고가 없어서 인근에 다시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성지를 조성하면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작은재 줄무덤 터에 기념비를 세워서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재줄무덤 십자가 위로 올라가면 좁은 등산로가 있는데 길을 따라가면 

임도랑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고 합니다.

약 3.5km의 도보길인데 저는 이날 차로 이동해서 (전부)  걸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도보길의 표지판이 정비되지는 않은것 같아보였습니다.




이제 지석리로 이동하겠습니다.



*지석리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368-1


지석리는  손선지 베드로 성인과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고향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한재권요셉 성인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하셨고

현재 천호성지에 묻혀계십니다.


*손선지 베드로
(1820-1866)
손선지 베드로 성인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통해 입교하였고 
어른이 되자마자 샤스탕신부에 의해 전교회장으로 임명됩니다.
자신의 집을 마을의 공소로 사용하며 
주변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1801-1866)
"오늘은 우리가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이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양반으로 태어난 정문호 성인은 천주교에 입교한 뒤 관직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박해를 피해 가족들과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병인박해 무렵 전주지방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서
손선지 성인과 함께 살았습니다.

두성인은 1866년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사로 압송되어 고문과 혹독한 형벌을 받았지만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고 
전주 숲정이에서 1866년 12월 13일 순교하게 됩니다.
* 1984년 5월 6일 시성

.

이곳 지석리성지는 비신자로 지석리에 살고 있던 손선지 성인의 후손들이

가난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성인의 시성 기념비라도 세워달라고

홍산성당에 밭을 기증하여 지금의 성지가 조성 되었습니다.






성지도장은 주차장에서 찎을수 있습니다.




*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제3판, 2019.6.30발행)



오늘은 작은 성지 세곳을 소개시켜 드렸는데요.

지난 영상에서는 날씨가 좋지않아서 편집에 애를 먹었는데

이번 영상을 찍었을때는 너무 날씨가 좋아서 정말 마음에 드는 영상톤이 나온것 같습니다.

다음 영상도 기대해 주시고요.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마무리 하겠습니다.
구독 안하셨으면  꼭 유튜브 채널 구독해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을 봐주신 모든 분들과 힘겹게 전염병과 싸우고 계시는 모든분들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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