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톨릭 성지

갈매못성지, 청양다락골성지, 신리성지, 합덕성당 (당일치기 대전교구 성지순례)

이 베드로 2020. 2. 17. 13:29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다시 찾은 네곳의 성지를 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https://youtu.be/wE6C7GBOHx0





갈매못성지




갈매못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매트르신부, 위앵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다섯성인과 무명순교자들이 순교한 바닷가입니다.


본래는 한양에서 처형하려 했으나  두가지 이유로 보령 갈매못이 형장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당시 병환중이었던 고종임금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한양에서 피를 흘리면 안 된다는 무당의 말에 250리 밖에 있는 갈매못을 처형지로 결정하게 되었고,

두번째 이유는 

안면도 외연도가 프랑스 로즈 제독이 침범한 곳이라

서양을 배척하는 의미로 갈매못을 처형지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블뤼 주교>

마리니 콜라앙투안 다블뤼 (Marie-Nicolas-Antoine Daveluy)

(1818년~1866년)


1845년에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 땅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는, 

21년 동안 활동하여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입니다. 

조선의 언어와 풍습에도 능통했고 교우들이 손쉽게 볼 수 있는 신심서, 교리서를 번역 저술하였습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사와 순교사의 정리는 그의 두드러진 업적들 중의 하나입니다.


조선 교회사 편찬을 위해 

조선사에 관한 비망기와 조선 순교사에 대한 비망기를 저술하여

1862년 파리(Paris)로 보냈으며

이를 기초로 나중에 달레 신부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저술하게 됩니다.


신리에서 체포된 다블뤼 주교는 더 이상 많은 교우들이 희생되는것을 막고자

숨어있던 오매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에게 자수를 권고하였습니다.

결국 자수한 두 신부와 황석두 루카, 그리고 장주기 요셉과 함께 갈매못 바닷가에서 

1866년 3월 30일 성 금요일에 순교하시게 됩니다. (군문효수형)


저서

“신명초행”(神命初行)

“회죄직지”(悔罪直指)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

 

번역서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


<오메트르 베드로 (Aumaitre Peter) 신부>

1863년 6월 말 조선 입국

1개월 동안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와 함께 서울에서 지낸 후

용인의 손골(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로 내려가 조선말을 익힘

1864년 9월에는 경기도의 한 구역을 맡아 사목.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오매트르 신부는 1863년 조선에 입국하여 

용인의 손골에서 조선말을 배우고 경기도에서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위앵 마르티노 루카 (Huin Martin Luke) 신부>

1865년 5월 27일 충청도 내포 지방에 상륙.

다블뤼 주교와 함께 내포 지방에서 조선어 공부를 하며 지내다가,

그 후 내포 지방에서 20리쯤 떨어진 당진 합덕 지방의 세거리 공소에서 사목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위앵 신부는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내포지방에서 조선말을 배우고

합덕 세거리 공소에서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황석두 루카 (黃錫斗)>

충청도 연풍의 부유한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페롱(Feron, 權) 신부의 한문 선생 겸 전교회장

베르뇌 주교와 함께 “회죄직지”를 위해 원고를 썼고,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를 도와 번역 출판과 그 교정에 힘썼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충청도 연풍의 부유한 양반집에서 태어난 황석두 루카는

다블뤼주교를 도와 번역 출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장주기 요셉 (張周基)>

수원 땅의 어느 부유한 외교인 집안에 태어났다.

학식이 있고 슬기로웠으며 신심이 두터웠기 때문에,

모방(Manbant) 신부가 입국하자마자 그를 회장으로 임명.

1845년 제천 배론으로 옮겨 와 베르뇌(Berneux) 주교와 함께 신학교를 세우고 관리.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수원의 부유한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난 장주기 요셉은

신심이 두텁기로 유명해서 모방신부가 그를 회장으로 임명하였고

제천 배론으로 옮겨와 베르뇌 주교를 도와 신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다섯분의 성인은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


순교성인비와 순교터비 그리고 주변은 십자가의 길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갈매못순교성지 기념관 겸 소성당 건물입니다.

앞에 야외 제대에는 다섯성인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이 꾸며져 있습니다.

*카페는 설연휴라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성모상 옆으로 순례자 도장을 찍는 곳이 있습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십자가 모양의 통로입니다.




청양다락골성지




청양 다락골 성지는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탄생한 유서깊은 교우촌입니다.


지난번 방문했을때와 가장 큰 변화는 

대성당 건물에 최양업 신부 기념관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청양 다락골성지는 제가 정기 후원을 하고 있어서 저도 작은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까지 새터성지에 신부님 생가를 짓지 못하고 있는데요.

많은 후원이 이루어져서 하루 빨리 생가를 복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리성지 




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촌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였습니다.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의 비밀교회)’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앞서 갈매못 순교성지에서 소개시켜 드린 다블뤼 주교의 사목활동지이기도 합니다.


예전영상에 신리성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는데요.

대성당 위층에 있는 작은 경당을 빼먹어서 이번에 촬영해왔습니다.


성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예전 영상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합덕성당



마지막 방문성지는 합덕성당인데요.

역시 지난 영상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지난영상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당일치기로 다녀온 네곳의 성지를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채널이 구독자 1,000명을 달성했습니다.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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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봐주신 모든분들께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길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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