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성지순례

사도 바오로의 순교지 "트레 폰타네"

이 베드로 2025. 6. 19. 12:57

트레 폰타네 세 분수 수도원(Abbazia delle Tre Fontane / Abbey of the Three Fountains)

Via Di Acque Salvie, 1, 00142 Rome Italy

https://youtu.be/BC2zRYVE3og

 

트레 폰타네(Tre Fontane)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세 개의 샘’ 또는 ‘세 분수’라는 뜻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1세기 네로 황제 치하에서 참수형을 선고받고,

로마에서 라우렌티나 가도(Via Laurentina)를 따라 지금의 트레 폰타네가 위치한 아쿠아 살비에(Acque Salvie) 골짜기로 끌려가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참수 당했을 때, 그의 머리가 땅에 세 번 튕겼고, 그 머리가 닿은 자리마다 샘물이 솟아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트레 폰타네, ‘세 개의 샘’ 또는 ‘세 분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 Saint Benedict of Nursia) 석상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어두운 나무 터널을 통과하게 되어있는데 마치 세상과 순교지(수도원)을 나누는 경계선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제일 먼저 베네딕토 성인 석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베네딕토 성인 석상]

베네딕토 성인(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 Saint Benedict of Nursia)의 석상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제스처는 단순한 침묵의 권유가 아니라, 베네딕토 수도 규칙의 핵심 정신인 “침묵(silence)”과 “내적 성찰”을 상징합니다.

트레 폰타네 수도원은 현재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고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시토회의 한 분파로 엄격하게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는 관상 수도회입니다.

방문객들은 입구에서 이 석상을 마주치며,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수도원 구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잠깐 용어 정리> 트라피스트 수도회 또는 엄률 시토회

영어 : 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

이탈리아어 : Ordine Cistercense della Stretta Osservanza

약칭: O.C.S.O.

일반 명칭: Trappists (영어), Trappisti (이탈리아어)

 

카롤루스 대제의 아치 ARCO DI CARLO MAGNO/ Arch of Charlemagne

[카롤루스 대제의 아치 ARCO DI CARLO MAGNO/ Arch of Charlemagne]

트레 폰타네 수도원 입구에는 카롤루스 대제의 아치라는 중세 석조 아치를 통과해야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도원은 성 아나스타시오의 유해를 교황 레오 3세에게 빌려주었고, 교황은 이를 카롤루스 대제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카롤루스 대제는 감사의 표시로 805년 토스카나와 마렘마 지역의 토지를 수도원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 아치의 벽에는 이를 기념하는 프레스코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 빈첸시오와 성 아나스타시오의 수도원 성당 CHIESA ABBAZIALE DEI SANTI VINCENZO E ANASTASIO/Abbey Church of Saints Vincent and Anastasius]

625년 교황 호노리오 1세(Onorio I)가 이곳에 최초의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으며, 동방에서 온 수도자들에게 맡기고 성 아나스타시오(페르시아 출신 순교자, 624년 순교)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온오리오’로 표기되나, 공식 가톨릭 용어는 ‘호노리오’입니다)

가운데가 성 빈첸시오와 성 아나스타시오의 수도원 성당

 

1140년 교황 인노첸시오 2세가 수도원을 시토회(시토 수도회, Cistercian Order)에 맡기면서, 성 베르나르도(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수도원 개혁을 주도했고, 이때 예전 성당을 허물고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게 됩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석상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San Bernardo di Chiaravalle /Saint Bernard of Clairvaux)]

1090년경 프랑스에서 태어나 1153년 사망한 수도자, 신학자, 시토회 개혁가

프랑스 클레르보(Clairvaux) 수도원을 창립하고, 유럽 전역에 160개가 넘는 시토회 수도원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370년 사라고사의 성 빈첸시오의 유해를 트레 폰타네 수도원에 모셔오면서 성당 이름에 빈첸시오가 추가되어, 성 빈첸시오와 성 아나스타시오의 수도원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고, 19세기 말부터는 트라피스토 수도회가 이곳을 관리하게 됩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시토회(시스터시안) 양식이 결합된 단순하고 엄숙한 구조로, 벽돌로 지어진 로마의 중세 수도원 건축을 보여줍니다.

각 기둥에는 열두 사도들과 예수님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맨 끝에는 있는 예수님 프레스코화는 Noli me tangere와 예수님의 세례식입니다.

[Noli me tangere(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는 라틴어로 "나를 만지지 마라" 또는 "나를 건드리지 마라"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부활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한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본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요한 20, 17)

고 말하시며, 부활 이후 인간과의 관계가 더 이상 물리적 접촉이 아니라 믿음과 내면의 유대로 바뀌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신약성경 마태오 복음(3장 13-17절), 마르코 복음(1장 9-11절), 루카 복음(3장 21-22절), 요한 복음(1장 29-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이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오 3,17)

이 장면은 예수님의 공생활(공적 사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며,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가 함께 드러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스칼라 첼리 성당 SCALA COELI / Stairway to Heaven

[스칼라 첼리 성당 SCALA COELI / Stairway to Heaven]

스칼라 첼리는 이탈리아어로 ‘하늘의 계단’이라는 뜻입니다.

공식 명칭은 Santa Maria Scala Coeli(산타 마리아 스칼라 첼리), 성모 마리아 스칼라 첼리 성당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 황제 디오클레 티아누스 치하에서 순교한 10,000여 명의 그리스도교 군인들(성 제노와 동료들)이 묻힌 곳 위에 이 성당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582년 비뇰라(Vignola)에 의해 개축되었고, 이후 유명 건축가 자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팔각형 평면에, 푸른색 돔에는 황금빛 별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성당의 이름인 스칼라 첼리(Scala Coeli, 하늘의 계단)는 중세 전설에서 유래했습니다.

성 베르나르도가 이 성당에서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던 중, 그 영혼들이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환시를 보았다고 합니다.

이 전승은 ‘스칼라 첼리 대사(大赦)’로 이어져, 이곳에서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성당 지하에는 크립트(지하 경당)가 있는데, 이곳이 성 제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전해집니다.

현재에는 무덤이나 유해는 볼 수 없었습니다.

*크립트(crypt): 라틴어 crypta에서 유래했으며, “숨겨진 장소”, “지하실”이라는 뜻

사도 바오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

제단 양쪽으로 철창으로 막혀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데, 오른쪽이 사도 바오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입니다.

성 바오로 순교의 길VIA DEL MARTIRIO DI SAN PAOLO / Way of the Martyrdom of Saint Paul

[성 바오로 순교의 길VIA DEL MARTIRIO DI SAN PAOLO / Way of the Martyrdom of Saint Paul]

 

스칼라 첼리 성당을 나와 성 바오로 순교 성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 바오로 순교의 길이라 불립니다.

이 길은 고대 로마의 라우렌티나 가도(Via Laurentina)의 일부로,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으러 이동했던 실제 길, 즉 사도 바오로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마지막 여정의 길입니다.

라우렌티나 가도(Via Laurentina)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구간

길 중간에 로마 시대의 옛 라우렌티나 가도(Via Laurentina)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성 바오로 순교 성당 CHIESA DEL MARTIRIO DI SAN PAOLO / Church of the Martyrdom of Saint Paul

[성 바오로 순교 성당 CHIESA DEL MARTIRIO DI SAN PAOLO / Church of the Martyrdom of Saint Paul]

CHIESA DEL MARTIRIO DI SAN PAOLO (성 바오로 순교 성당)은 트레 폰타네 수도원 단지 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성당으로, 사도 바오로가 참수형을 당한 전통적인 순교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아쿠아 살비아(Ad Aquas Salvias)’로 불렸고, 4세기부터 순교지로 기념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파세로티(Bartolomeo Passerotti, 1604년 작) ‘성 바오로의 참수(Decollazione di San Paolo)’ 성화

 

구석의 벽 모서리에는 기둥이 보이는데, 바오로 성인이 참수 당할 때 묶였던 기둥이라고 합니다.

기둥으로부터 왼쪽으로 사각 기둥 형태의 대리석 니치(벽감)가 세 개 있는데, 이곳이 참수당한 바오로 성인의 머리가 세 번 튀었던 곳이고, 세 개의 샘물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청동으로 만든 바오로의 두상이 있었습니다.

 

 
 

샘의 앞부분에는 철망사로 된 그물창이 설치되어 있어, 그 너머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물창 뒤로 보이는 공간은 실제로 물이 흘렀던 수로(물길)로, 과거에는 샘에서 물이 흘러나왔으나 1950년 이후로는 위생 문제로 인해 물이 차단되었다고 합니다.

 

 

세 곳의 높이가 다른 것은 성당이 지어진 이 땅이 실제로 경사진 지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트레 폰타네는 제 로마 순례의 마지막 여정이었습니다.

로마를 순례하는 동안 웅장하고 거대한 성당들을 많이 순례했는데, 누군가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트레 폰타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트레 폰타네에서 느끼는 감동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앙의 연결고리였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이곳에서 제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흘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기도했습니다.

 

 

 

제 포스팅은 유튜브 영상이 중심이 되어 작성되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내레이션 대본, BGM 등 정말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들었으니 블로그 포스팅만 보지 마시고 꼭 유튜브 영상도 봐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유튜브에 담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추가하겠습니다.

이 순례기는 2024년 11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WYD 상징물 전달식 대표단에 촬영 스태프로 동행하며 했던 촬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WYD 상징물 전달식 대표단의 여정에 대한 영상은 유튜브 '서울 세계청년대회 WYD Seoul 2027'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따로 링크를 걸진 않겠습니다. 검색해 주세요)

트레 폰타네 성지는 위치가 로마 중심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처 방문하지 못하시는 순례자들이 많은데 저는 꼭 방문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어떠한 성당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던 성지입니다.

케이블 타이로 보수되어있는 바로오 사도의 감옥 철창

다만 수도원에서 관리가 부족해서인지 바오로가 마지막으로 갇혔던 감옥을 케이블 타이로 보수하거나

무너져 내려가는 벽을 그냥 시멘트로 대충 때운 모습들을 봤을 때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성지가 있다면 이렇게 관리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번잡하고 마치 관광지 같은 로마 시내의 성당에서 벗어나서

정말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성지라는 점입니다.

로마를 가신다면 꼭 순례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