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이 끝난 갈곡리성당 (의정부교구)
작년 7월에 의정부 교구 성지순례중에 갈곡리성당을 방문했었습니다.
안타깝게 성당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서
수리중인 성당의 모습만을 보여드렸는데요.
공사가 끝난 갈곡리 성당을 다시 찾아가보았습니다.
성지순례일 : 2021. 4. 21
■갈곡리성당 (의정부교구)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화합로 466번길 25
갈곡리는 葛(칡 갈), 谷(골 곡), 칡이 많은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말로는 '칠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19세기말 강원도 홍천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이
이곳에서 6km 정도 떨어진 '우골'(현 우고리) 에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그중 김근배 바오로 가족, 김연배 방지거 가족, 박만보 베드로 가족이
1896년 칠울로 옮겨와 정착하면서
갈곡리와 신암리 일대에는 교우촌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우들은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는데
칠울과 우골, 고령 지역에 옹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점토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성당의 앞마당도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첩첩산중에 교우들이 들어와 살면서 경기북부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시작되게 됩니다.
1898년 신자수 65명으로 약현본당 소속의 칠울공소가 설립되었고
이후 송도(개성) 본당(1901), 신암리 본당(1923), 덕정리 본당(1934),
의정부 본당(1947) 소속을 거치다가
1955년 미국 해병대 군종신부의 도움을 받아
의정부 주교좌성당을 본뜬 현재의 공소 성당을 건립하게 됩니다.
갈곡리 성당은 특히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가 배출된 성소의 못자리입니다.
칠울공소 출신의 남매 하느님의 종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와
(하느님의 종)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는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북녘 땅에서 소임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 (1903-1950)
1921. 9. 8 살트르 성바오로회 입회
1928. 8. 14 첫서원
1934. 8. 12 종신서원
1950. 10. 17 황해도 매화동 성당 순교
겸손하고 조용하며 희생전신이 강했던 김정숙 수녀는 1921년 살트로 성바오로회에 입회하여
1926년 부터 황해도 매화동 성당의 봉삼유치원에 부임하여 순교하기까지
24년간 교육사도직에 전념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15일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상륙으로 공산군이 퇴각을 하면서
수녀들을 찾아내어 처형하였는데
김정숙 수녀는 낫, 도끼, 칼로 맞아버려진 뒤 이틀을 버티다가 17일 순교하십니다.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 (한국인 최초 성직 수도자)
(1914-1942)
1926 성베네딕토회 수도원 입회
1939. 4. 10 첫서원
1942. 5. 1 사제수품
김치호 신부는 1926년 열두살의 나이에 서울 백동 성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927년 베네딕토회가 서울에서 덕원으로 이전하면서 신학생 준비과정을 시작합니다.
1942년 5월 1일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성직 수도자가 됩니다.
음악, 그림, 시, 수필에도 조애가 깊었고 /독일어 실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1944년 덕원수도원 수련장 보좌로 임명되었고 1945년 덕원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사목활동을 하던 중에 결핵에 걸려서 투병생활을 하게 됩니다.
1949년 5월 11일 밤 북한 공산당이 덕원수도원에 들이닥쳐
독일인 선교사와 한국인 신부들을 체포해
평양 인민교화소로 압송하였고,
1950년 10월 5일 후퇴하던 공산군에 의해 각목으로 구타를 당해
순교하시게 됩니다.
함경도에서 순교한 김치호 신부는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한 명으로,
황해도에서 순교한 김정숙 수녀는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한 명으로
시복 절차가 진행중 입니다.
리모델링을 마친 성당의 모습입니다.
순례도장은 강당앞에 비치되어있습니다.
도장들이 많은데 대부분 의정부교구 도보순례길 도장들이어서
구분하셔서 찍어야합니다.
오늘은 작년에 약속드린대로 공사가 끝난 갈곡리성당을 다시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도 제 영상을 봐주신 모든분들과
몸이 불편하신 분들, 병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